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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간의 병원 일지

category 소소한 일상/삶의 이야기 2023. 1. 28.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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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약한 대로 와이프가 병원에 입원하면서 간병이 시작되었다. 간병이라는게, 은근히 할게 있고 또 은근히 할게 없다. 병을 고치는 어떠한 처치를 하지만, 사실 병을 고치는건 시간이다. 시간이 병을 삼킨다. 입원병동 10층에서 바라보는 밖은 언제나 분주하고 또 언제나 한가지다. 불편하지만 느긋하고, 할일이 많으면서도 여유가 있다

잠을 못자겠다.

보호자의 간이 침대는 너무나 불편하다. 병원이 간병인을 위한 기관이 아니기에 환자 위주로 돌아가야 하지만, 와이프가 입원한 병원은 접으면 의자, 펴면 침대가 되는 간이 의자겸 침대를 제공하는데, 이게 의자의 역할로도 불편하고, 침대의 역할로도 불편하다. 어차피 편한걸 바라고 온건 아니지만 간병이란것 역시 쉽지 않다.
새벽 3시반에서 4시쯤엔 어김없이 간호사가 와서 환자의 혈압을 재고, 상태를 살피고 간다. 첫날은 간이 침대에서 뒤척이다가, 간호사가 들어오자 깨서 앉아 있었고, 둘째날은 그냥 누워서 뒤척였다가, 3일째 되는날은 와서 재고간지도 모르게 그냥 잠들어 버렸다. 이래서 적응이 무섭다.

하루가 일찍 시작된다.

환자의 식사는 오전 7시반에 아침으로 시작된다. 사실 7시반이지만 7시15분만 돼도 밥이 온다. 그리고 저녁은 5시반에 주니까, 다들 저녁을 일찍먹고, 이닦고, 정리하고 9시가 되기전에 병실의 불은 꺼진다. 따라서 오전 6시반전에 이미 사람들이 일어나서 부스럭부스럭 정리를 하고 병실불이 켜진다. 새벽에 자고, 늦게 일어나는 내 생활패턴과는 너무나 다른 삶의 시계가 돌아가는 공간이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 아니던가. 나 역시 눈감는 시간이 점점 빨라지고, 뒤척이는 시간은 줄어들고, 잠을 자는 시간은 늘어나고 있다.
의료진의 회진 시간은 다 다르지만, 첫날은 오전 7시10분, 다음날은 오전 7시40분.. 도대체 의사들은 출근시간이 얼마나 이른건지, 드라마에서 보면 다들 병원에서 잠들고 생활하기에 그럴수 있다고 하기엔, 분명 그럴 짬이 아닌 머리가 희끗한 교수님들도 그 시간에 회진을 돈다. 분명 출퇴근하시는분 일텐데 의사라는 직업이 그러한듯하다.

병원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옆 침대, 앞 침대의 사람들은 수시로 들락날락 바뀐다. 하루짜리 입원도 있고, 내가 들어오기전부터 계셨던 할머니는 아마 와이프가 퇴원하고 나서도 계실것 같다. 언제 입원했는지, 언제 퇴원할지도 모르는 사람들도 하루하루 병원 생활을 이어 나간다. 동일한 삶의 패턴이 아주 정확하게 반복되면서 시간이 멈춘 공간이 된다. 뉴스에서는 이번주말도 최강 한파입니다 라면서 떠들어대고, 핸드폰 날씨는 영하 12도를 가르키지만, 여기는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예상컨데 내일도 모든 사람이 반팔이나, 얇은 긴팔을 입고 있을것이다. 그게 환자복이듯, 간호사복이듯, 의사복이든.
이제 와이프병실을 드나드는 몇몇의 간호사들의 얼굴이 낮익는다. 수술한 교수님 말고 직접 담당 의사의 얼굴도 누군지 알것 같다. 전문직에 있으면서 서비스직도 같이 겸하고 있는 그들은 항상 친절하다. 힘든 직업중에 하나가 사람과 직접 대면하는 직군이다. 게다가 병원은 아픈사람들과 대면한다. 환자에게 똑같은 병을 설명하고, 똑같은 시간에 반복적인 업무를 하는걸 보면, 병원이란 공간은 환자에게만 멈춰진 공간이 아니다. 그들 역시 같은 공간에서 같이 공감한다.

언제 먹어야 하지?

환자의 밥은 꼬박꼬박 나온다고 하더라도, 보호자는 알아서 끼니를 챙겨야 한다. 장기 입원하는 사람들을 보면 햅반을 한박스씩 가지고 들어가는 사람도 있었고, 배선실에서 밥한술에 반찬 두어가지를 놓고 단촐한 식사를 하시는분들도 많았다. 장기입원 계획이 아니였기에 별 생각없이 들어온 나는 매일 지하 식당에가서 밥을 사먹는다. (사실 먹거리를 이것저것 좀 쌌다가 짐이 어마어마하게 불어나는 바람에 다 빼버렸다.) 지하식당에는 다양한 한식을 제공하는 푸트코드도 있고, 샐러드도 팔고, 베이커리도 있고, 참새 방앗간 같은 편의점도 있다. 샌드위치를 파는 퀴즈노스나, 떡볶이를 파는 스쿨푸드도 입점해 있다. 첫날은 먹거리를 보고 눈이 뱅글뱅글 돌았으나, 점점 사먹는것도 지친다. 음식하나 먹을때 마다 리뷰를 올릴까하는 생각을 첫날에는 했으나, 먹고보니 여기서 밥을 먹는 사람들은 맛집을 찾아온게 아니다. 보호자들이 여기서 먹는 음식은 살아남기 위해 자기 몸에 제공하는 최소한의 행위다.
여러날, 여러번을 먹다보니 음식을 거르는 방법도 터득한다. "착착 입에 붙는게 조미료를 아끼지 않고 넣으셨군. 이 코너는 이제 스킵!" 같은 나름의 원칙도 생기고, 편의점 도시락도 꽤 괜찮다라는 (편의점 도시락 처음 사먹어 봤다) 생각도 한다. 저온 냉장되어 있는 밥이 어떻게 이렇게 포슬포슬한지 모르겠다. 반찬가지수는 많은데 한두번 집으면 비어버리는 반찬과, 밥도 양이 많아 보이도록 아주 얇게 기술적으로 펴놓았지만, 가격대비 퀄리티는 훌륭하다. 편의점에서는 쭈뼛대며 컵라면에 김밥이나 사먹던 나에게 도시락을 혼자먹는 행위는 장족의 발전이다.

그리하여..

어찌되었건 병원생활은 내일로 마지막이다. 오히려 멈춰진 공간안에서의 존재하는 나는 여유롭고, 편안하다. 2주 휴가를 쓸때보다 마음은 더 평온하다. 사실 와이프의 수술이 잘 되었고, 따라서 큰 걱정이 지나갔기에 나만의 이기심이 만드는 아주 괘씸한 상태이다. 여전히 방송에서는 코드블루가 흘러나오고 분주하게 신발이 끌리는 소리와 휴게실에는 가족들의 안타까움과 걱정이 한가득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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